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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도시 부산

사랑하는 나의 도시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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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는 대한민국 남동부에 위치한 광역시입니다. 대한민국의 제2의 도시이자 최대 해양도시이며, 부산항을 중심으로 해상무역과 물류 산업이 발달했습니다. 일본과는 대한해협을 두고 마주하고 있습니다. 

연제구 연산동에 시청이 위치해 있고, 총 1개의 구와 1개의 군으로 행정구역이 나뉘어 있습니다. 

 

부산의 야경


역사

부산은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무리 지어 살기 시작했습니다. 삼한시대에는 지금의 동래나 남구 등지에 "거칠산국"이 있었고, 서면이나 남포동 등지에는 "가락국"등의 부족국가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삼국시대 신라는 서기 1세기 후반인 탈해 이사금 때 기장의 장산국과 거칠산국을 점령하게 됩니다. 

부산포 일대에는 가야의 종발성이 세워져 신라와 가야의 각축장이 되는데, 내물마립간 대인 서기 400년경에 가야가 신라를 침공했다가 광개토대와의 고구려군에게 대패하여 패망하자 부산 전역이 신라의 영역에 편입되었습니다. 옛 거칠산국은 거칠산군이 되고, 종발성은 "큰 시루"라는 뜻의 대증현이 되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인 77년 경덕왕에 의한 행정개편으로 거칠산군은 양주(현재의 양산시)소속의 동래군으로 개칭되었습니다. 

대증현은 동평현으로 개명되어 기장현과 함께 동래군의 관할현이 됩니다. 


고려시대인 1018년 동래군이 동래현으로 격하되고 울주의 속현이 되며 동래군의 속현이던 동평현은 양주의 속현이 되었다. 1397년 동래군에는 진이 설치됩니다. 조선시대인 1405년 울주의 속현이었던 동래현이 독립현이 되고 양주의 속현이었던 동평현이 동래의 속현이 되었습니다. 15세기 전반까지 부산은 ‘부산포’로 불렸는데, 동래는 1547년 동래도호부로 승격이 되었습니다. 1592년 울산 개운포에 있던 경상좌수영을 동래부 남촌면(현재 수영동)으로 옮겼습니다. 9월 1일 이순신이 부산포해전(부산 해전)으로 승리를 거두었고, 임진왜란전후에는 부산진이 조선통신사의 출항지로 활용되었습니다.


1876년 조일수호조약에 의해 조선이 강제 개항되었을 때, 인천, 원산과 함께 개항되었고, 왜관은 일본인 거류지가 되었는데, 부산은 1877년 1월 《부산구거류지약조》의 체결로 일본이 일본인들의 보호관리 및 통상사무의 관장을 위해 관리관을 파견하면서부터 일본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1880년, 일본은 영사관을 정식으로 설치하고 일본 거류지를 사실상의 일본 영토처럼 만들어 버렸습니다. 일본은 일본인 가구가 200여 호밖에 안 되던 때부터 장기적으로 도로망을 계획하고 가옥 구조를 규제했으며, 1880년대에 일본은 철도 부설을 위한 측량까지 모두 마치고 식민 통치의 교두보를 마련하였습니다. 부산은 개항 후 1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안에 일본의 도시처럼 변했고 소수의 일본인들에 의해서 지배되는 도시로 되어갔습니다. 1895년 6월 23일(음력. 윤 5월 1일) 동래부 동래군이 되었고, 이듬해 1896년 8월 4일 경상남도 동래군으로 개편되었습니다. 이후 부산항이 무역항으로 정비되면서 항구도시로써 발전하게 되는데, 1905년에는 경부선이 개통함과 함께 부산역이 개업했습니다.


 일제강점기 1914년 4월 1일에 부산부는 부산부와 동래군으로 분할되었고 동시에 외곽의 기장군이 동래군으로 편입되었습니다. 1925년 4월 1일에는 경상남도청 진주에서 부산 아미동으로 이전되었고, 1936년 동래군 서면(현 부산진구 일대)과 사하면 일부가 부산부에 편입되고, 1942년 동래군 동래읍(현 동래구), 사하면, 남면, 그리고 북면 일부가 부산부에 편입되었습니다.

 


1949년 8월 15일 부 시로 개칭하면서 부산시로 개칭되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서울이 함락되면서, 부산은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대한민국 임시 수도가 되었습니다. 전쟁을 피해 많은 피란민이 유입되어 인구가 급증했고, 1963년 1월 1일 경상남도 관할에서 직할시로 승격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명칭이 '부산직할시'가 아니라 그냥 '부산시'였고, 단지 정부 직할이기 때문에 앞에 경상남도만 붙지 않았을 뿐이었으며, 1981년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부산직할시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다만 당시의 신문 기사 등을 살펴보면 비공식적으로는 부산직할시라는 명칭도 통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직할시'이기는 하였으나 '부산직할시'는 아닌 과도기의 명칭으로, 이 시기를 부산직할시로 표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근래 들어서는, 경상남도 산하 시절과 정부 직할 기를 구별하기 위하여 앞에 '정부 직할'을 괄호 병기하여 '(정부 직할) 부산시'로 표기하는 추세입니다.

1978년 2월 15일 낙동강 서쪽의 김해군 대저읍, 명지면이 부산시에 편입되었습니다. 1981년 4월 4일 지방행정에 관한 임시조치법 개정으로 법령상 공식적으로 '부산직할시'의 명칭을 얻게 되었습니다.1989년 1월 1일 김해군 녹산면, 가락면이 부산직할시 강서구에 편입되었습니다. 1994년 12월 20일 지방자치법이 재개정됨에 따라 1995년 1월 1일자로 직할시가 광역시로 일괄 개칭되어 부산직할시에서 부산광역시로 개칭되었습니다. 1995년기장읍, 장안읍, 일광면, 정관면, 철마면이 부산으로 편입되어 기장군이 신설되었습니다. 1996년부터 부산국제영화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1999년에 시청사가 중구에서 연제구로 이전하였고, 시청 주변으로 법원·검찰청 등의 관공서도 이전하였습니다. 2002년 FIFA월드컵, 2002년,2002년 아시안 게임이 열렸고, 2005년 11월 18일에는 APEC 정상회담을 개최하였습니다.
현재 부산시당국은 2023년 11월 개최지 발표를 앞두고  2030 세계 EXPO 유치를 위해 준비 중입니다. 

부산expo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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